‘영원한 현역’ 구옥희의 골프인생 33년

Ku Ok Hee

비구니 같은 삶의 뒤안길에서…

구옥희는 1988년 스탠더드레지스터클래식 정상에

오르며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우승자가 됐다. 이후 한국 여자골프에는 새 바람이 불었다.

골퍼가 되겠다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났고, 골프는 어느덧

대중스포츠로 발전했다. 선구자인 구옥희의 손에는 여전히

클럽이 쥐어 있다. 해외 통산 25승을 거두며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KLPGA) 명예의 전당까지 오른 그녀가 선수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간 3주년을 기념해

골프인생 33년을 맞은 그녀의 지난 삶을 돌아봤다

‘괜찮은 곳일까…’ 소녀는 불안했다. 살던 집은 점점 멀어져 백미러에서 형체를 감췄다. 연천을 떠난 이삿짐 트럭은 새 집이 있는 고양을 향해 내달렸다. 비포장도로에서 트럭은 미친 듯이 춤을 췄다. 덩실거리는 차 안에서 소녀는 애장품을 두 손에 꼭 쥐었다.

옛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부모를 일찍 여의었다. 아버지는 네 살 때 잃었고, 어머니는 열세 살이 되던 해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낸 뒤 소녀와 세 오빠는 그동안 살던 포천 집을 뒤로 하고 연천으로 이사했다. 이사는 그녀에게 좋은 추억이 아니었다.

“다 왔습니다.” 뱅글뱅글 돌던 바퀴가 멈췄다. 뿌옇게 일어난 흙먼지 속에 새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는 낯설었다. 새 집은 물론 주변 모든 것이 그랬다. 들리는 작은 소리까지. “휙~” 생소한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소녀는 호기심이 많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풀숲을 지나 나무 사이를 몇 번 통과했을 때, 곧 넓은 평원이 두 눈에 들어왔다.

잔디 위에서 한 남자가 쇠파이프 비슷한 긴 막대로 달걀만 한 크기의 하얀색 공을 냅다후려쳤다. “휙~” 이곳에 오기 전 들었던 소리다. “짝짝짝!” 신기한 일이다. 잔인할 법도 한 동작에 남자를 둘러싼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왜들 저러지?’ 새 집에 대한 불안감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빈자리는 호기심으로 채워졌다. 작은 설렘과 함께. “그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골프가 내 인생에서 30년 이상 함께할 것을….” 33년이 지났지만 구옥희는 이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골퍼를 꿈꾼 캐디***

1975년 봄, 일주일이 지났지만 19살의 구옥희는 고양의 새 집이 여전히 낯설었다. 어떤 것이든 정을 붙여야 익숙해지는데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사 오던 날 봤던 골프장이다.

“골프장을 처음 봤을 때부터 골퍼의 꿈이 생긴 것 같다. 친구 오빠가 그곳에서 레슨한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부탁했다.”

지인의 도움으로 그녀는 주말캐디로 골프장에서 일했다.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단번에 삼일골프장의 간판캐디로 성장했다. 인기 비결은 지속적인 공부에 있었다. 필드를 나갈 때마다 골퍼들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살폈고, 남는 시간에는 일본 골프 잡지를 읽으며 동작을 공부했다.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면 자신을 찾는 골퍼들에게 전했다. 인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캐디로 일하면서 돈이 아닌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녀는 세계를 호령할 프로골퍼를 꿈꾸고 있었다.

캐디로 일한 지 6개월 뒤, 구옥희는 화살 시위를 잡아당겼다. 골프장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옆에 있던 클럽을 한 손으로 냅다 집어 들었다. “골퍼가 되고 싶습니다.” 그녀의 돌출발언에 사장은 당황했다. 1970년대는 여성이 사회 진출하는 데 제한받던 시절이었다. 구옥희의 친구로 1979년 프로자격증을 획득한 이경순 씨는 “골프 하는 여자를 천연기념물보다 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며 “전국 아마추어 선수가 다 합쳐서 100명이 안됐다”고 했다. 이 중에 10대와 20대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구옥희는 골프에 재능이 있었다. 필드에서 만난 골퍼들과 동료 캐디들은 매번 골퍼가 될 것을 권유했다. 골프장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그녀를 유심히 지켜본 사장은 이야기를 듣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로 그녀는 어깨에 클럽이 가득 담긴 골프백을 메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무거웠을 골프백이지만 이날만큼은 천사의 날개처럼 가벼웠다.

지독했던 자신과의 싸움

“휙~” 스윙을 마친 구옥희가 허리 굽혀 볼을 집었다. 그때만 해도 볼이 저절로 나오는 연습볼 박스가 없었다. 일일이 볼을 올려놓고 쳐야 했다. 연습량은 상당했다. 하루에 24개 박스를 소화했다. “볼을 많이 쳐야 포만감이 생겼다.” 그녀는 볼을 많이 칠수록 꿈에 가까워질 것 같았다.

“옥희야, 연습 잘 하고 있어?” 친구들이 연습장을 찾았다. 손에는 막 튀긴 통닭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잠시만, 조금만 치고.”고개 돌려 친구들을 본 구옥희는 다시 시선을 골프볼에 맞췄다. “휙~, 휙~” 1시간이 지났지만 연습은 끝나지 않았다. 저린 무릎을 만지던 친구들은 조금씩 지쳐 갔다. “놓고 갈게. 맛있게 먹어. 연습 잘하고.” 친구들이 사라지고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다. 의자에 놓인 통닭은 저녁공기에 식어 버렸다.

친구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생각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잘될 것 같으면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은 서서히 사라졌다. 되찾는 방법은 연습 강도를 높이는 것뿐이었다.

연습량은 자연스럽게 두 배로 늘어났다. 구옥희는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자주 눈을 찌를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회상했다. 더 크게 눈을 뜨고 더 무섭게 볼을 노려봤다.

그녀는 “햇살을 마주 보고 스윙하다 보면 나도 모를 오기가 생겼다. 좌절이 희망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하고 연습했다” 고 말했다.

“옥희는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2시간 동안 조깅하고, 골프연습이 끝나는 저녁에는 집에서 웨이트 트레이닝과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키웠다. 쉬는 모습을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구옥희의 큰 오빠 구달희 씨의 말이다.

오빠들은 동생의 검게 그은 얼굴과 노랗게 물집 잡힌 손이 늘 안쓰러웠다. 남들처럼 시집가서 편하게 살기를 바랐다.

“좋은 남자 한번 만나 볼래?”

“아니.”

“그러지 말고 한번….”

“오빠, 내 자세 좀 한번 봐줄래?”

동생의 말에 오빠들은 움찔했다. 집에서까지 스윙연습을 하는 동생에게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

프로 데뷔 그리고 일본 진출

1978년 남자프로골프협회(KPGA)는 내부에 여자부를 따로 신설했다. 여성골프 붐을 일으키자는 취지에서였다. 구옥희는 그해 5월 26일 열린 국내 최초 여자 프로테스트에 참여해 당당히 합격했다.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골프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은 여전히 낮았고, 대회 수는 이전과 비슷했다. 상금 액수는 큰 차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프로 데뷔 후 필드에서 만난 선수들은 모두 낯이 익었다.

구옥희는 이 중 가장 돋보이는 선수였다.

1980년, 1982년 각각 5승을 거두는 등 1983년까지 총 16번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을 해도 화제가 되진 않았다. 소식은 늘 신문 단신에 실릴 뿐이었다. 거리를 나가도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루 빨리 큰 무대로 나가 나를 알리고 골프를 알리고 싶었다.”

구옥희의 해외 진출 꿈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구옥희는 목표로 일본을 선택했다. 미국 진출을 권유한 사람도 있었지만 서양인들과의 싸움에서 자신이 없었다. 체격부터 다른 그들을 상대하려면 일본에서 경험을 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무작정 일본행 비행기를 오른다고 무대에 설 수는 없는 일이다. 구옥희는 여러 번 진출을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를 맛봤다. 이유는 늘 같았다. 현지 연결자가 필요했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했던가. 운명처럼 골프가 다가왔듯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1982년 봄, 남서울골프장에서 연습하던 구옥희에게 한 일본교포가 찾아왔다.

“지금 일본에서는 대만과 중국 선수들이 선전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저력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네, 자신 있습니다. 연결만 도와주세요.”

구옥희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절실함이 묻어났다.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구옥희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본선수 파악에 나섰다. 일본 잡지는 물론 선수들의 자세가 담긴 비디오를 보며 동작 하나하나를 체크했다. 이경순 프로는 “일본 프로골퍼들의 스윙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구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지금 일본으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구옥희는 바로 짐을 챙겨 일본으로 날아갔다. 공항에는 홍두창이라는 재일교포가 마중을 나왔다. 둘은 레스토랑으로 이동해 식사를 하며 골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뒤 홍두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입니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둘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순간 다른 테이다. 경기위원들은 필드에서 보이지 않게 압력을 행사했다. 몇몇 일본선수들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일삼았고, 갤러리들은 구옥희의 차례가 오면 왁자지껄 떠들며 방해공작을 펼쳤다. 필드에서 그녀의 편은 없었다.

구옥희는 “일본은 미국보다 차별이 더 심하다”며 “신인왕도 받지 못하는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1985년 구옥희는 3승을 거두며 JLPGA 신인상을 받았다. 신인상은 일본체육협회에서 선정했다. JLPGA에서 선정했다면 그녀의 손에 넘어왔을 리 만무했다.

구옥희에게는 차별대우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이경순 프로는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지만 함께 생활하면서 급속히 체력이 떨어지는 걸 여러 차례 봤다”고 했다.

지병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구옥희는 “어머니가 몸이 좋지 않을 때 낳아서 그런 것 같다”

고 했다. 체력은 떨어졌지만 운동에는 소질이 있었다. 구옥희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투포환 선수로 뛰었다. 하고 싶은 운동은 따로 있었다. 여럿이서 움직이는 구기종목을 선호했지만 체력문제로 혼자 뒤처질 것이 두려워 포기했다.

“이틀에 한 번 잠을 설친다. 지금도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 충분한 수면 없이 컨디션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구옥희는 “경기를 0앞두고 잠을 설치면 컨디션이 아무리 좋아도 경기를 망쳤다”고 말했다. 당시 JLPGA는 매주 경기를 가졌다. 일정을 소화하는 데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뒤통수 오른쪽은 자

주 마비됐고, 티잉그라운드에 설 때 다리가 후들거리기까지 했다. 구옥희는 “18홀을 돌고 나면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고 고백했다.

해결책은 멀리 미국에 가서야 찾을 수 있었다. LA의 한 절에서 구옥희는 참선을 체험했다. 설법을 듣고 단전호흡을 연마했다. 절을 나온 뒤에는 ‘단’이라는 책을 읽으며 단전호흡을 공부했다. “기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랄까. 대회에서 모든 코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후 그녀는 지금까지 단전호흡을 거르지 않았다. 이경순 프로는 “함께 동계훈련을 간 적이 있는데 수도원에 온 줄 알았다. 저녁에는 놀 법도 한데 오후 8시만 되면 바로 단전호흡에 들어갔다”고 했다. 한 골프 관계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사람들을 깨우는데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너나 뛰어’라고 화를 낸 적이 있다”

며 “동료들과 함께 ‘환갑까지 선수할 거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미국 진출과 아쉬움 “아, 맛없어.” 구옥희는 구수한 된장찌개가 그리웠다. 식탁에는 빵과 잼뿐이다. 된장찌개는 언제부턴가 식탁에서 종적을 감췄다.

“미국에 가면 한국식당 없어. 빵 먹는 연습해.” 지인의 말이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았다. 바로 빵 한 입을 물고 되새김질에 들어갔다. “미국 가면 무조건 빵만 먹어야 하는 줄 알았다.”

구옥희가 빵 먹는 연습을 한 건 미국 진출을 눈앞에 뒀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프로 간 대항전에서 3등을 차지해 자격을 얻었다.

그녀는 불안했다. 모든 조건에서 서양인보다 나은 게 없었다. 체격은 더 작았고 영어도 구사할 줄 몰랐다. 부실한 체력으로 미국 대륙을 왕복하는 것은 그녀에게 쥐약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에서 연습하던 어느 날 구옥희의 연습장을 찾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그녀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이렇게 약한 몸으로 어떻게 경기를 해?”

그러나 1988년 그녀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다. 터콰이즈클래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우승자가 됐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거둔 1승이라 기쁨은 어느 대회보다 컸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국내 반응은 현지보다 시들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겹쳐 이슈가 되기 힘들었다. “방긋 웃고 있는 호돌이가 미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골프하는 사람들만 알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정작 아쉬움은 다른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 최초의 LPGA투어 우승자를 박세리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LPGA투어를 뛴 한국인 선수 37명 가운데 30명은 박세리를 롤모델로 삼은 ‘박세리 키드’들이었다. 골프 글로벌화를 실현한 선구자로서 서운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한국여자골프는 구옥희 이후 이영미, 원재숙 등 다수가 ‘저팬 드림’을 실현했고, 1994년에는 고우순이 2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JLPGA투어 신인상 계보를 이었다.

1998년과 2001년에는 한희원과 이지희가 각각 그 뒤를 이었다. LPGA투어도 마찬가지다. 구옥희의 터콰이즈클래식 우승이 없었다면 그로부터 10년 뒤 박세리의 등장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박)세리? 조카 같은 친구지. 서운함이 조금 있지만… 하하하!”

구옥희의 허탈한 웃음 뒤에 진심이 담겨 있는지 모른다.

은퇴를 앞두고

골프채를 잡은 지 33년이 지났지만 구옥희의 손에는 여전히 클럽을 쥐어져 있다. 올해 52세다. 이마에는 어느덧 가느다란 주름이 생겼고, 머리카락 군데군데에서 염색 냄새가 풍긴다. “힘들다. 갈수록 몸이 예전같지 않다.” 가장 달라진 것은 집중력이다. 규칙적인 참선생활도 흐르는 세월의 바이오 리듬은 뒤집어놓을 수 없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선을 통해 수양했지만 회복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이는 필드에서 집중력 상실로 이어졌다. 구옥희는 “요즘 경기를 하다 보면 ‘젊었을 때 내 집중력은 대단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며 “회복이 돼도 무기력하다는 느낌을 영 지울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할 수 없다. 프로생활 30년 동안 해외에서 무려 25승을 거뒀다. 그러나 한 가지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JLPGA 투어 저팬오픈 우승이다.

“일본에서 가장 큰 대회 아닌가. 다른 선수들보다 체력은 떨어지지만 자신 있다. 그간 쌓아온 기술을 앞세워 승부하겠다.”

구옥희는 마지막 우승과 함께 이어지는 멋진 은퇴를 꿈꾸고 있다.

그동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구옥희는 “35세가 되던 해부터 5년 주기로 은퇴를 고민했다”며 “내 33년 골프 인생은 감옥에 갇힌 것 같았다”고 말했다.

부진을 거듭할 때마다 같은 스윙을 반복하는 자신은 쳇바퀴를 구르는 다람쥐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남들과 다르다. 부실한 체력으로 절제된 생활은 필수였고, 겨우 리듬을 찾으면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골프채를 잡은 뒤 이러한 삶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았다. 아직 미혼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옥희는 “결혼하면 선수생활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며 “아들, 딸을 옆에 둔 친구들이 부럽지만 33년 동안 골프와 결혼했다고 생각하면 한결 나아졌다”고 말했다. 골프와 함께한 지난 30년은 그녀에게 도를 닦는 시간이었다.

‘댕댕댕~’ 시계 시침과 분침이 12시를 가리켰다. 울리는 자명종 소리에 구옥희가 입을 열었다. “우승과 관계없이 올해 은퇴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이윽고 그녀는 짧게 자른 머리를 매만진다. “어때요? 젊어 보이나요?” 어느덧 구옥희는 평범한 여자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었다.